모형으로 사유하라




수학자가 자와 콤파스가 없다는 것은 포수에게 총이 없고, 농부에게 땅이 없고, 어부에게 배가 없고, 조종사에게 비행기가 없다는 것과 같아서 말짱 황이다. 개뻥이다. 수학자는 반드시 자와 콤파스가 있어야 한다.


이는 목수가 규구를 가져야 하는 것과 같다. 규구라고 하면 콤파스와 곱자인데 목수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상징이다. 재판관은 저울이 상징이다. 서초동 대법원에 가보면 정의의 여신상이 있는데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울이 모형이다. 그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1) 사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2) 연역과 귀납이 사유의 방법이다. 
3) 연역은 지식의 창조에 쓰이고 귀납은 의사전달에 쓰인다. 
4) 경험의 공유가 안 되면 의사소통은 장님코끼리 만지기로 실패다. 
5) 귀납은 반드시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모형이 있어야 한다.


모형이 없었으므로 인간은 의사소통을 못했다. 그러나 내가 이제 모형을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깨달음을 다운로드 받기만 해도 된다. 깨달음 역시 대량생산, 대량복제, 대량전파가 된다.


석가의 제자 500비구는 다 깨달았다. 석가가 깨달음을 다운로드를 해줬기 때문이다. 육조 혜능의 제자들도 다 깨달았다. 그 당시의 문제들을 실제로 해결했다. 당시 사회에 진보의 기운이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교는 과학에 밀렸다. 문제해결을 못 한다.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은 고(苦)이고, 고는 집에서 나오고, 집은 멸로 타파해야 하며, 멸은 도로 가능한다. 문제는 요즘 인간들이 도무지 고(苦)가 없다는 거다. 현대인은 그다지 고롭지 않다. 다들 행복하게 잘먹고 잘 삽니다. 생노병사의 고는 의사를 찾아가서 해결한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이 할 일이 없다. 중생의 괴로움을 고쳐주려고 하나 중생들이 병원에 가서 괴로움을 잘 고치고 있다. 깨달은 사람이 중생을 구제하려고 했더니 재벌이 일자리 창출해서 중생구제 한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할 일을 얻을 때까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깨달음은 매우 어려운 일로 되었고 근자에 와서는 깨달은 사람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연장이 나왔으므로, 포수가 총을 얻었고 농부가 땅을 얻었고, 어부가 배를 얻었고, 조종사가 비행기를 얻었으므로 그냥 복제하면 한다. 여러분은 힘들게 머리에 힘주고 명상할 필요없다. 마음수련 그딴거 사실 필요없다. 그냥 저한테 깨달음을 다운받으면 된다. USB에 담아준다. 단 구조는 알아야 한다. 구조는 깨달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USB에 담아줘도 디바이스가 없으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구조론이 디바이스다.


이제 수행할 필요도 없고, 명상할 필요도 없다. 다 필요없다. 연장이 있어야 한다. 명상가의 연장은 구조론의 모형이다. 의사가 의사노릇을 하려면 청진기가 있어야 한다. 의사는 청진기가 환자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깨달음은 구조론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사랑이라고 하면 섹스를 의미할 수도 있고, 연애를 의미할 수도 있고, 더 깊은 의미의 사랑도 있다. 그 중에 어떤 사랑을 말하는지 알려면 그 사랑을 해봐야 한다. 여러분 중에 24시간 마음이 업되어 있는 진정한 사랑을 해본적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 그런 사랑 해본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안해본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을 설명한다는건 허무한 일이다.


깨달음으로 소통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것을 바로 상대방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모형으로 뇌를 다시 세팅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깨달음이 무엇인가? 깨달음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깨달음이다. 수학자들끼리는 외국어 몰라도 소통이 된다. 연주자들끼리는 외국어 몰라도 소통이 된다. 축구선수들은 외국어 몰라도 패스만 잘 한다.


우리는 보통 포지션으로 소통한다. 한 사람이 말리면 하나는 부추기고, 하나가 남편역할하면 한쪽은 아빠역할, 하나가 이쪽으로 가면 하나는 저쪽으로 돌고, 사슴을 쫓는 늑대무리처럼 구태여 말 안해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게임에 빠져버린다. 남편역할, 아내역할, 자식역할, 그 역할에 빠져서 편견과 고정관념과 집착과 타성에 빠지는 것이다.


아이는 사고칠때 주목을 끌고, 아빠는 호통칠 때 주목을 끌고, 엄마는 뜯어말릴때 존재감을 느낀다. 인간이 포지션으로 소통하면 점점 배가 산으로 간다. 아이는 계속 사고치고, 아빠는 계속 호통치고, 엄마는 계속 말리고 점차 코메디가 되어 간다. 그 경우 변화에 취약하다. 집안에 문제가 닥치면 해결을 못한다. 포지셔닝 게임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늘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뭔가 문제가 생겼는데 골키퍼는 자꾸만 골대로 가고, 공격수는 자꾸 공몰고 가고, 타자는 자꾸 방망이만 돌리고, 감독은 덕아웃에 들어가서 안 나오고 그러면 안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자기 역할을 버리고 광장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대통령도 나오고 총리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 다 나와야 한다. 계급장 떼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역할을 다시 정해야 한다.


왜 사람들이 점차 편견과 고정관념과 집착에 빠질까? 그래야 소통이 잘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고쳐야 부인이 말리고, 그래야 부부간에 대화도 한번 해보고, 점점 심해져서 결국 가정파탄이 난다. 연인간에 사랑싸움도 그렇다. 잘 관찰해보면 서로 삐치고 등돌려야 밀도있는 소통이 일어난다.


그냥 서로 좋아좋아 하고, 장단이나 맞춰주다보면 본질이 되는 중요한 이야기를 못한다. 사랑싸움을 해야 서로 마음에 있는 불만을 털어놓고 진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사랑싸움 하다가 그게 진짜싸움이 되어서 결국 갈라선다.


말로 풀어야 할 것을 포지셔닝으로 풀면 망하는 것이다. 근데 다들 포지셔닝으로 풀려고 한다. 왜? 그래야 긴장도가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내 생일이 몇월 며칠인데 선물 줘’ 이렇게 좋게 말로 하면 소통이 안 된다. 그 생일날 까먹는다. 화를 내고, 토라지고 해야 눈치를 채고 선물을 한다.


인간사회에서는 말로 좋게 대화하는 것 보다 틀어서 안티로 가는 전략이 오히려 대화가 잘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안티로 가다가 결국 갈라선다. 인간 사회의 모든 실패는 이 공식대로 일어난다. 이명박 정권도 보면 좋게 말로 하면 못 알아먹고 촛불을 들어야 그나마 약간 알아듣는다.


연애할 때는 남자가 한없이 떠받들다가 결혼하면 바로 돌변하여 길들이기 들어간다. 결국 작전이 안 먹혀서 갈라선다. 인간이 언어로 할 것을 감정으로 하고, 눈치를 주고, 핀잔을 던지고, 화를 내고, 토라지고, 삐치고 하는 이유는 그래야 그 사건의 중요도가 전달이 되어 진정한 소통이 되기 때문인데, 이것은 독약과 같아서 점점 중독되면 내성이 생겨서 결국 파국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언어로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 포지셔닝으로 가도 중독되어 파국이다. 답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모형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형으로 소통해야 완전하다. 모형의 소통이 이심전심의 소통이다.


가부장은 권위를 휘둘러야 소통이 되고, 말썽쟁이는 반항을 해야 소통이 되고, 울보는 울어야 존재감을 느끼고, 부인은 잔소리를 할때라야 역할을 인정받고, 선생은 권위적으로 군림해야 학생이 복종하고, 군대에서는 얼차려를 줘야 후임병들이 따르고 그러다가 인류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가 아닌 포지션으로 중요한 소통을 한다. 정설보다는 역설로 소통한다. 그 방법으로 긴장도를 전달한다. 그러다가 망한다. 그렇다면 그 포지셔닝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경험에 의해서 가능하며 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깨달음이고 구조론의 모형이다. 이거 하나로 해결보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중요한 사건과 돈을 버는 큰 사건이 있다면 어느 쪽부터 해결해야 할까?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부터 구해야 할까? 아니면 1억짜리 사업을 먼저 성공시켜야 할까? 대부분의 속임수는 이런 형태로 일어난다. 중요한 것이 먼저고 큰 것이 나중인데 이걸 속이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거 먼저 큰거 나중이다. 화장실을 먼저 갔다오고 난 다음에 밥을 먹어야 한다.


관념좌파.. 큰일부터 하자.
개혁세력.. 중요한일부터 하자.


무뇌좌파와 개혁세력의 논쟁이 대부분 이걸로 싸우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 있느냐 이선에 있느냐의 차이다. 현장을 떠나 있으면 뭐가 중요한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시동부터 걸어야 차가 가는데, 무조건 ‘가자’고 외치는 거다. 왜냐하면 차를 타 본 적이 없으니까. 이러한 수순을 알게 하는 것이 모형이다.


유재석은 팀원들 간의 밸런스를 잡아줄줄 아는 사람이고, 강호동은 상황을 주도하고 난국을 돌파하는 리더십이 있다. 이건 양반이다. 그 포지션을 넘어선 것이다. 자기 포지션에 빠져 있는 사람은 대개 이죽거리거나, 방해하거나, 심통부리는 방법으로만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 경우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바른 길을 제시할 수는 없다.


코미디 프로 보면 한 사람은 열심히 웃기는데 다른 한 사람은 옆에서 받아주기만 하고 못웃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옆에서 받아주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형이 있어야 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서로 웃기려고 이상한 짓 하면 팀이 깨져서 낭패다.


가정파탄이 일어나는 이유, 조직파탄이 일어나는 이유, 구조붕괴가 일어나는 이유는 서로 웃기려고 해서 그런 것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하면서 점점 극단으로 간다. 중간에서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다 깨져 버린다. 모형이 있어야 밸런스를 이루어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중요한 역할 - 중간에서 잘 받쳐주는 사람.
큰 역할 - 잘 웃기는 사람.


썰매개가 열여섯마리 개썰매를 끌 때 대장개가 지휘를 하는데, 개들이 잘못된 코스로 접어들면 맹렬하게 짖고 목덜미를 물어서 혼을 낸다. 노련한 썰매개 대장은 개들을 잘 지휘해서 급커브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기가 막히게 회전을 성공시킨다. 근데 썰매개 대장이 잘못된 길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바른 길을 안내할 수는 없다. 오직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방법으로만이 지휘할 수 있다. 이런 거다. 포지셔닝으로 소통하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 하고 비슷해서 자살골 넣기 시합이 된다. 잘해서 점수를 따는게 아니고 잘못해서 점수를 잃는 것이며 덜 점수를 까먹는 쪽이 이기는 거다. 이건 바보짓이다.


긍정적인 방법으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왜? 바보니까. 오직 반대할 때만 존재감을 드러내고, 오직 시비할 때만 역할을 얻고 그러는데, 이걸 넘어서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런데 부부간에도 친구간에도 서로 비웃고, 핀잔을 주고, 경멸하고, 주먹으로 생일빵을 치고 뭐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바보들 많다. 만나면 반갑게 ‘야 임마. 또라이!’ 하고 인사하는 양아치들 많다. 이건 아니다. 이게 다 강호동, 유재석이 없어서 그런 거다. 이경규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중간에서 받아주는 역할을 안 해서 그런 거다. 김구라가 뜨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반대하고 비난할 때 뿐 아니라 긍정하고 주도하면서도 존재감을 줄 수 있고, 정해진 자기 역할을 넘어서면서도 존재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를 봐도 약방에 감초 아저씨는 감초 역할밖에 못하고 평생 조연만 한다. 조영남은 늘 TV 나와서 뺀질거리고 욕먹는거나 하고, 이경규는 호통이나 치고, 꼬장이나 부리고, 박명수도 호통개그 외에 못하고, 김구라는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고, 또 자학개그만 하는 사람도 있고, 다들 자기 역할에 갇혀서,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그 답게에 갇혀서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빠져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받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역할게임에 갇혀 있어서는 평생 조연이나 하지 주연은 못되고 더욱 연출자나 감독이나 작가는 못된다. 진정한 사람은 조연에서, 주연으로, 연출자로, 프로듀서로, 작가로 계속 올라설 수 있어야 한다. 깨달음의 모형으로 가능한다. 중간에서 받아줌으로써 가능하다. 깨달음은 포지셔닝 구조의 바른 모형을 제시하므로 그 포지셔닝 구조에 갇히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슬퍼하고, 고통을 주고, 심통을 부리고, 못된 짓 하고 하는게 사실은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방법으로만이 감정을 전달하고 긴장도를 전달하고 소통의 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 필요해서 하는 거다. 그러다가 망하는 거다. 초등학교 꼬마가 여자애들 노는데 가서 훼방놓는 방법으로만이 관심을 표시할 수 있다거나, 혹은 시설에 수용된 어린이가 오줌을 싸는 등 퇴행적인 행동으로만 보모의 관심을 끈다거나 하며 망가지는 거다.


김정일이 지금 꼴통부리고 있는 것도 실은 미국과 한국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애정표현을 이상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면으로는 말을 못하고 항상 안티로만 말을 거는 그런 사람 있다. 사랑한다면서 더 화를 내는 그런 사람 있다. 뭔가 필요하면 그걸 달라는 말은 못하고 대신 인상만 쓰는 사람 있다. 구조의 모형으로 보면 다 보인다. 좋아하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화를 내고 결국 멀어지고 그런 인간들의 한심한 모습이 다 보인다. 속 보인다. 속보여.


우리나라가 중간에서 받아주는 역할을 해야, 동북아중심국가 역할을 해야 북한과 미국,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정리되는데 중간에서 안 받아주고 일본, 미국에 붙어버렸으니 밸런스가 깨져서 다 망가지는 거다. 생색나는 큰 역할보다 드러나지 않아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의존하게 해야 한다. 필요한 때 자신을 찾도록 해야 한다. 삼국지의 유비나 수호지의 급시우 송강 캐릭터가 그러하다.



Written by 김동렬
칼럼니스트, 구조론연구소 소장

 
     
  
Kkk 
wrote at 2016.02.12 23:04
깨달음의 구조1부터 잘 보고있습니다. 엄청난 통찰이 담겨있고 마음이 너무 즐거워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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