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사태의 교훈
'도요타나 명박이나 거기서 거기'



달릴 때는 잘 달린다. 그런데 멈추지를 못한다. 결국 절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끝. 일본 역사에 늘 반복되어 온 일이다. 임진왜란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전쟁을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도요토미가 꾀를 냈다. 전쟁에너지를 외부로 돌린 것. 대륙으로 관심을 옮겨놓고 섬에서 탱자탱자. 그러나 미봉책에 불과. 도요토미가 죽고 또다시 반복되는 내전. 무려 150년 간이나 계속된 전쟁.


1467년 오닌의 난에서 1615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도쿠가와가 제도를 바꿔서 상황을 종결시켰다. 이후 200년 간 계속된 평화. 도쿠가와 막부의 장수비결은 시스템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그 배경에 퇴계유교의 영향이 있음은 물론이다. 철학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논리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고서야 비로소 상황이 종결된다.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이차대전도 비슷하다. 여러 번 전쟁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이겼지만 러시아의 두 배나 되는 사망자로 보아 전술적으로는 진 싸움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 덕을 본 것이고.


뤼순에서 기관총밥 된 10여만 병사의 희생을 반성하지 않은 것. 노몬한 전투도 그러하다. 러시아 전차부대에 박살이 났지만 수만 명의 인명희생은 대다수 일본인들이 종전까지 알지 못했다.


나중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위패의 숫자를 세어보고 알았다고. 뤼순에서 막대한 인명피해가 났을 때, 노몬한에서 패전했을 때, 바로 그 때가 광란의 폭주를 멈추고 반성할 시점이었다.


왜 그들은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고 반성해야 할때 반성하지 못했을까? 시스템의 결함 때문이다. 본질은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지역 특유의 구조적 난맥상이 있다.


고립된 섬에서 인신매매가 일어나고, 고립된 촌에서 노예노동이 일어나는데 다들 알면서 쉬쉬한다. 누구도 막지 못한다. 다 아는 섬이라서 경찰과 짜고 부두만 감시하면 빠져나갈 수 없다.


그에 따른 패배주의.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누군가 내부에서 개선노력을 해도, 중간에서 트는 자가 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말거라는 허무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 죄수들 서로간에 굳은 신뢰가 있어서 둘 다 부인하면 함께 풀려나는 상황에서 죄수들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막고 불신을 조장하여 각개격파 하는 것.


서로 상대가 밀고할 것으로 예상하여 둘 다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고립된 지역에서는 저항하려 해도 누군가 중간에 밀고해서 상금을 타려들기 때문에 애초에 시도조차 못하는 것이다.


패배주의. 허무주의. 좌절. 단념. 포기. 절망. 체념의 악순환. 80년대 우리나라도 비슷했다. 데모대 따라다닐때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말 있다. “너그들. 그래봤자 안된데이. 정신차리그래이.”


그때 그시절. 누구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옳지만, 어차피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 그게 비겁이다. 조선의 지조있는 선비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일본의 난맥상은 맥아더가 외부에서 개입하여 시스템을 바꿔주고서야 정리되었다. 외부충격 없이 내부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적은 거의 없다. 메이지도 흑선에 대포알 맞고 한거고.


재미있는 점은 미군의 우려. 일본에서 대량의 자살자와 반란자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일본인들은 맥아더의 지배에 복종했다. 엉뚱하게 일본인(?)도 아닌 오키나와인만 자살했다.


무엇인가? 그들은 진작 전쟁을 끝내고 싶었지만 다들 겁이 나서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 특유의 용맹성? 희생정신? 국가에 대한 충성심? 일본도의 상징성? 일본정신? 다 허상이다.


그들은 실로 비겁자였다. 잘못하고 있음을 알면서 겁이 나서 누구도 용기있게 발언하지 않았던 거. 다들 패배주의,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침묵하고 있었던 것. 심지어 신격화된 히로히또 조차도.


자기 힘으로도 그 광란의 분위기에서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믿었던 것. 진작 끝내길 원했으면서도 원폭 맞고서야 ‘상황이 이 지경이니 이제 그만하자고 하면 신하들이 말을 들어먹겠지.’


신하들도 마찬가지. ‘전황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를 올렸으니 위에서 결단을 내려주겠지.’ 다들 그러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 혼네와 다테마에로 구분하는 일본인 특유의 이중심리.


그리고 복잡한 내부 파벌문제. 파벌싸움에서 밀릴까봐 결함 은폐하고 전전긍긍. 미쯔비시 자동차의 몰락, 도요타 자동차의 몰락! 둘이 흡사하다. 결함은폐, 대규모 리콜, 그리고 대몰락의 코스.


왜 일본만 유독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일본은 섬이다. 고립되어 있다. 감춘다. 왜 감추는가? 첫째 감출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감추는 것이다. 대륙이라면? 어떻게든 알려지고 만다.


감출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감추지 않는 것이다. 둘째 들통나더라도 조그만 섬이라서 전여옥 식으로 억지를 부리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만 봐도 알만하다.


전 국민이 다 알아도 쉬쉬하고 그냥 넘어간다. SBS 긴급출동 SOS처럼 마을사람 전체가 공범이 되어서 말이다. 삼성은 이미 공룡이다. 국가의 힘으로도 통제되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


일본의 야쿠자가 그렇듯이. 대한민국 전체가 공범이 되어서, 삼성 하나에 발목이 잡혀서,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로 눈치나 보면서 우물쭈물 하고 있다. 그때 그시절 일본인들처럼.


국민의 삼성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하다. 뉴스보면 ‘옴니아는 되는데 아이폰은 안 되네’ 하는 기사가 무수. 이것이 다 우연일까? 오늘도 ‘아이폰 증권거래 옴니아는 원래 되는데.’ 장난하자는 건가?


이쯤 되면 사설왕국이다. 올가미에 목이 조여오는 기분이다. 그러나 아이폰의 등장으로 인하여 삼성에 대한 존경심은 급전직하다. 무엇인가? 고립된 지역에서 다들 한통속이 되어서 어쩌지 못한다.


지배자가 무슨 짓을 해도 제재받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재가 나타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을 비판하지만, 대체재가 없어 결국 바뀌지 않을거라고 믿기 때문에 단념한 것.


이명박이 된 확실한 이유는 정동영이 이명박의 대체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급 인물 뜨면 한순간에 바뀐다. 그러나 그래도 본질은 비겁. 이 나라에 참된 선비가 없기 때문이다.


2차대전 중 일본 지식인의 비겁이 그렇다. 고립된 곳에서 어차피 왕초를 꺾을 자는 없어. 집단 무기력증. 비단 지리적 고립만은 아니다. 합리적 비판이 먹히지 않는 환경 자체가 고립이다.


북한도 그렇다. 누구도 현재상황을 원치 않는다. 잘못됐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쩌지 못한다. 김정일 본인부터. 겉으로는 통큰정치를 표방하나 본질은 우유부단 그 자체.


왕조시대 조선은 달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직언하는 선비가 있었다. 그 결과 대규모의 내전은 조선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유교합리주의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는 일본의 전국시대와 같았다.


이자겸, 묘청,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의 난에 만적의 난, 망이 망소이의 난까지. 왜 내란이 계속될까? 힘으로 억누르는 결과에 누구도 승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승복하지 않을까?


승복하고 싶어도 승복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논리는 유교에서 나왔다. 유교가 전해지자 조선왕조가 태평시절, 일본에서도 전쟁 끝. 결론하자. 첫째 지리적인 고립, 둘째 승복할 논리가 문제다.


그 논리가 죄수의 딜렘마를 깨는 힘. 서로간에 신뢰가 구축된다. 내가 먼저 폭로하면 주변에서 합세해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조선왕조의 선비들에게는 그게 있었다. 기개가 있었다.


김용철 변호사에게도 그게 있었다. 그러나 호응은 없었다. 선비는 없었다. 선비정신은 끊겼다. 요즘 연합이며 방송이며 포털사이트 알아서 기는게 가관이다. 전여옥 하나 해결 못하는 악순환.


고립된 지역에서 흔한 현상이다. 대륙은 다르다. 대륙기질 있다. 어떻게든 거짓은 징벌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상황을 종결하는 논리가 없으면 대륙이라도 고립된 섬이나 마찬가지 현상은 있다.


미국도 한때 록펠러, 카네기 등 거대재벌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폭주하던 시대가 있었다. 루즈벨트에 의해 질서가 잡혔다. 미국도 어떤 점에서 섬이다. 먼로주의가 그러하다. 영국도 섬이다.


폭주하던 때 있었다. 교황이 뭐라든 카톨릭을 성공회로 바꾸면 되고. 그 영국 해적들이 미국을 건국했으니. 영국도, 미국도, 중국도 어떻게 보면 섬이지만 세계는 섬이 아니다. 인류 전체는 섬 아니다.


2차대전, 일본은 러일전쟁과 같은 요행수를 믿었다. 독일이 러시아를 격파해 준다면? 미국이 유럽에 발이 묶인다면? 승리한 독일과 일본이 힘을 합치고 미국에 맞선다면? 그러나 두번의 요행은 없었다.


이명박식 실용주의. 좋은게 좋아.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진실은 감추면 되고. 들통나면 거짓말로 둘러대면 되고. 저항하면 검찰 부려서 윽박지르면 되고. 은폐, 변명, 파멸. 구조적인 문제다.


조선왕조가 유교를 도입하고 전란을 끝냈듯이, 도쿠가와가 시스템을 바꾸어 전쟁을 끝냈듯이, 철학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논리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고 시스템을 갈아야 현상이 타개된다.


일본의 지리멸렬. 본질은 의사결정 실패다. 의사결정을 해도 패자가 승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춘다. 회사내의 복잡한 파벌싸움 때문에 입 맞추고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런 거짓들이 이길 때는 기세를 타서 더 크게 이기게 하고 질 때는 몰락하게 한다. 이명박의 실용주의. 국민이 승복하지 않는다. 의사결정 실패다. 세종시 수정안도 사대강도 국민이 반대한다.


왜 국민이 반대할까? 민주주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즉 집단의 의사결정 실패 때문이다. 이명박의 거짓, 정운찬의 대규모 리콜시도, 빅근혜의 이탈, 정몽준호의 침몰. 이것도 정해진 공식인가?


철학을 바꾸어야 한다. 요행수 바라고 꼼수나 부리는 거짓, 은폐, 억압, 요령, 잔머리, 미래가 없는 임기응변 위주 실용주의에서 옳고 그름을 확실히 따지는 백년대계의 합리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봤자 어차피 안 된다’는 섬나라 근성, 고립된 지역 특유의 부정적 사고 버리고, ‘한 알의 불씨가 요원의 들불을 일으킨다’는 대륙적 마인드, 긍정적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서로간에 신뢰를 부르는 이심전심의 끈이 받쳐주어야 한다. 내가 일어나면 모두 따라서 일어나 줄것이라는 믿음을 낳게 하는 이념적 토대의 공유가 필요하다.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고립된 지역에서 한 놈이 길목을 막고 내부를 다 먹는 폐쇄형 구조의 닫힌사회를 극복하고 사방으로 열려서 건설적인 경쟁이 일어나는 열린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밀실에서 혼자 결정하고 사후통보하는 독재체제에서, 민중의 저항도 합법적 의사결정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다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http://gujoron.com

 

 
     
  
wrote at 2012.07.09 07:37
정보 공유를위한 감사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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