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팟캐스트 
생각의 정석
1회 완전성이란 무엇인가?

당신 앞엔 문이 하나 있습니다.
낯선 세계로 들어갈 것인가 말것인가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릅니다.
구조론 팟캐스트 생각의 정석 1회 시작합니다.




기획, 편집, 진행 : 오세준
게스트 : 김동렬, 함성한
제작 : LALALACAST

www.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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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 그리고 부조리 

디자인이 정답이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기에 정답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수준을 높여야 한다.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어서 하는 말이다. 필자가 합리주의 대척점에 부조리를 놓았다고 해서 ‘아 합리주의는 나쁜 거구나’ 하고 받아들이거나 ‘숨은 전제를 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아 전제가 없어야 하는구나 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그건 너무 초딩스러운 장면이 아닌가?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갖춤이 있다. 전제는 당연히 있다. 필자가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전제, 숨은 전제, 알아채지 못하는 전제, 암묵적으로 합의된 전제다. 합리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이 나쁜 것도 아니고, 칸트가 나쁜 것도 아니고, 마르크스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근데 수준이 낮다. 중학생이라면 칸트나 마르크스를 읽는게 맞다. 



금릉13채



수준 좀 올리자는 거다. 금릉 13채는 전형적인 스필버그 영화다. 미국에서 만들었다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을 것이다. 근데 ‘아카데미는 똥이다’ 하고 외치는게 구조론연구소다. 아카데미도 나름대로 장점은 있다. 단지 중학생용이라는 거다. 적어도 어른이 되어가지고 ‘아카데미에서 상받았대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날린다면 창피한 거다.  


영화에는 주제도 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하고 교훈도 있어야 한다. 근데 주제, 감동, 교훈은 아줌마들 보는 주말연속극에나 필요한 거다. 구조론연구소에서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창피하지 않은가? 구조론연구소라면 당연히 위트와 패러독스와 반전을 논해야 한다. 풍자와 패러디와 병맛을 논해야 한다. 현대성이 있어줘야 한다. 


애들은 국진이빵을 논하고 어른은 와인맛을 논한다. 애는 애니까 그렇고 어른은 어른이니까 그렇다. 소보루빵이 어떤 맛인지 그게 필자의 관심사는 될 수 없다. 필자도 가끔 마트에서 소보루빵을 사먹을 때가 있지만 그건 비밀이어야 한다. 족보가 있다. 합리주의, 계몽주의 족보가 있고 그 반대편의 족보도 있다. 그리고 투쟁해 왔다.






◎ 합리주의, 계몽주의 - 인간을 조직하여 권력을 창출한다.
◎ 미학, 깨달음, 돈오 - 인간을 상승시켜 집단지능을 형성한다.
 



이 둘은 크샤트리아와 브라만처럼 계급이 다르다. 가는 길이 다르다. 방향이 다르다. 물론 합리주의도 필요하고 계몽주의도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인과 학자는 신분이 다르다. 합리주의, 계몽주의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 미학, 깨달음, 돈오는 거꾸로 문제를 생산한다. 문제해결을 바라는 사람과 문제생산을 바라는 사람은 신분이 다르다.


연예인들은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연예인은 튀어야 제맛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르다. 문제해결지향과 문제생산지향은 애초에 다른 방향을 보고있는 것이다. 이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하려고 하면 곤란하다.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이들은 영원히 서로 만나지 않는다. 2차원과 3차원은 만나지 않는다.


3차원 안에는 2차원이 들어가지만 2차원 안에는 3차원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쨌든 만화는 점점 병맛화 되고, 그림은 점점 인상화 되고, 예능은 점점 리얼리티화 된다. 갈수록 수준이 높아진다. 대본이 있는 쪽과 대본이 없는 쪽이 비교하면 대본이 있는 쪽이 더 재미가 있다. 그런데 결국 대본이 없는 쪽만 살아남는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대본이 있는 드라마는 전편을 봐야 이해가 된다. 대본이 없는 리얼리티쇼는 중간에서 봐도 되기 때문이다. 만화도 장편극화는 점차 퇴출된다. 2차원과 3차원이 경쟁하면 결국 3차원이 이기게 되어 있다. 흑백TV가 컬러TV를 이기지 못하듯이. 라디오가 TV를 이기지 못하듯이. 이는 깨달음의 상호작용이 인간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노자

공자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사람이고 노자는 인간을 상승시키려 했던 사람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사건은 끝난다. 평화가 찾아오면 군인은 실업자가 된다. 계몽주의나 합리주의는 그 시대에 필요한 가치일 뿐 영원불변의 보편가치가 아니다. 인간이 무지할 때 계몽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집단의 힘을 끌어낼 때는 합리주의가 필요하다. 


실용주의를 비판할 때는 합리주의가 필요하다. 혼자 떠들었던 노자보다 시스템을 만든 공자가 더 뛰어난 인물이다. 그런데 공자는 크샤트리아고 노자는 브라만이다.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걸 뒤섞어서 논점을 흐리면 곤란하다. 마키아벨리나 한비자는 인간을 수단으로 다룬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도리어 민주주의와 가깝다. 


도덕이나 윤리를 앞세우며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선진국이라면 불우이웃답기나 자선사업을 하면 안 된다. 그 사람들이 부도덕한 사람일까? 아니다. 이건 맥락이 다른거다. 좋은 사람이 우유부단한 태도로 여러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흔하다. 좋은 사람이니까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믿음은 웃기는 생각이다. 


부조리라는 개념이 막연한 회의주의, 현실도피, 지식인의 겉멋으로 간다면 곤란하다. 정답은 있다. 합리가 있다. 단지 그곳에 없을 뿐이다. 저쪽에 합리가 없으면 이쪽에 합리가 있다. 문제와 답이 대칭구조를 이룬다. 어떻게 대칭을 끌어내는가? 상호작용을 통해서 끌어낸다. 스필버그 영화는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안 쳐주는 거다. 


윤리나 도덕도 필요하니까 있는 거다. 그것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아뿔싸! 그걸 강조하는 사람이 정신병자라는게 함정이다. 그건 마치 축구할줄 모르는 감독이 정신력을 강조하는것과 같다. 기술없는 감독이 정신력 타령을 일삼는 것이다. 윤리도덕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그게 때로는 정신병자를 가려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게 본질이다.



◎ 감독 - 정신력으로 승리하겠습니다.
◎ 협회 - 저 새끼 미쳤구만. 당장 짤러. 
 



히틀러



이문열이나 김지하나 조갑제들도 팩트를 낱낱이 따져보면 맞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근데 미쳤다. 정신병원에 가봐야 한다. 김정은 개새끼 맞다. 근데 ‘김정은 개새끼’ 하고 떠들고 다니는 자들은 미친 새끼가 맞다. 베를루스코니가 며칠전에 ‘무솔리니가 한 일 중에 잘한것도 있다’고 말해서 이탈리아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 말은 맞다.


히틀러도 찾아보면 잘한 것은 있다. 아우토반 만든건 잘했다. 그런데 베를루스코니는 미친 새끼가 맞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들어온 왜들 중에는 착한 왜도 있었다. 그런데 착한 일본인도 있었다고 말하는 새끼는 미친 새끼가 맞다. 일본이 근대화를 도운건 맞지만 침략하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은 GDP가 4만불이다. 전체 맥락이 중요하다.     


박정희가 한 일 중에 잘한 것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가 쿠데타를 안 했다면 지금 한국은 최소 3만불은 넘어갔다. 이런건 전체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잘한 것도 있는데 잘한 것도 있다고 말하면 미친 새끼다. 잘한거 없다. 히틀러나 박정희는 태어난게 유죄다. 사리분별을 못하고 헛소리 한다면 초딩이다. 말이 안 통하는 장면이다. 


말이 통해야 한다. 맥락을 알아야 한다. 실용주의를 비판할 때는 합리주의가 강조되지만 깨달음을 논할 때는 합리주의가 비판된다. 실용주의는 바이샤 계급이고 합리주의는 크샤트리아 계급이고 깨달음은 브라만 계급이다.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 미신을 믿는 사람이나 행운에 기대는 사람 앞에는 이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게 합리주의다. 



스티브 잡스



그런데 이성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소통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성은 소통을 못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때는 이성으로 만든게 아니고 특유의 소통능력으로 만든 것이며 이성을 터득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 밑에서 개발자 하고 있다. 이성은 프로그래머밖에 못한다. 패션 디자이너 밑에서 재단사 노릇 밖에 못한다.  


이성으로 논하면 애플은 지나치게 디자인에 몰입해서 비효율적인 디바이스를 만들었다. 아이폰 뜯어보면 나사가 50개도 넘는다고 한다. 나사못을 10개 미만으로 줄인 갤럭시폰이 더 이성적이다. 근데 그게 이성의 한계다. 상품은 되는데 영감은 못 준다. 명백하게 계급의 차별이 있다. 신분의 차별이 있다. 차원이 다르고 레벨이 다르다.


21세기는 기술보다 디자인의 시대이고, 이성보다 감성의 시대이고, 권력의 집중보다 소통의 확산이 먹히는 시대이고, 극화보다 병맛의 시대이고, 드라마보다 시트콤의 시대이고, 버라이어티쇼보다 리얼리티쇼의 시대이고, 크샤트리아보다 브라만의 시대이다.   

     

이러한 맥락을 모르고 막연히 반항을 앞세우고 막연히 부조리를 주장하며 바바리코트의 칼라에 얼굴을 파묻고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흑백사진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냥 흉내나 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우울한 부조리는 2차대전 직후의 포즈, 21세기의 부조리는 유쾌한 병맛이다. 정답없는 부조리가 아니라 정답있는 부조리여야 한다. 


정답은 있다. 그곳에는 없다. 정답은 대칭이다. call에 없고, 숨은 전제에 없고, 상부구조에 없고, 권력에 없고, 대신 현대성에 있고 상호작용에 있다. 기술자는 정답이 있다. 프로그래머는 분명한 정답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에는 결단코 정답이 없다. 그런데 정답이 있다. 모르겠는가? 디자인이 정답이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기에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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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용을 중시하는 바이샤에서, 이성을 중시하는 크샤트리아로, 다시 소통(깨달음)을 중시하는 브라만으로 올라서십시오. 실용을 중시하면 아이폰을 파는 매장에서 영업을 하고, 이성을 중시하면 잡스 밑에서 개발자나 하고, 소통을 중시하면 스스로 잡스가 됩니다. 어떻든 당신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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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조리인가?

완벽하게 부정했을 때 몸의 반응이 들려온다





도교라는 것이 도무지 무엇인가? ‘부정적 사고의 힘’이라고 번역한 어떤 서양사람이 있었다. 핵심을 짚었다.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한 마디로 반항이다. 노자의 부정과 까뮈의 반항, 무언가 통한다.


족보가 있다. 원래 동양사상은 인간중심 철학이다. 공자도 신을 경원했다. 석가는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신을 섬기는게 아니라 인간이 신의 레벨로 올라서는 것이다. 이건 방향이 다른 거다.


묵자는 반항을 했고, 법가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폭로했다.(한비자는 마키아벨리와 비견할 인물인데 민주주의를 발명할 뻔 했다.) 원래 군주의 통치권은 신권으로부터 위탁받는 것인데 한비는 이를 과학으로 대체한 것이다.


동양철학은 원래 출발점이 깨달음에 기초하고 있다. 다만 공자의 언설이 헷갈렸을 뿐 아니라 황제들이 공자의 사상을 통치에 이용할 의도로 조직적으로 왜곡했다. 그래서 공자가 황제의 통치권이 신권에서 위탁받는다(동중서의 천인감응설)는 거짓말을 해준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 공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칼 마르크스




서양으로 눈을 돌리면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마르크스는 칸트를 비판하고 있고 칸트는 교부철학을 비판하고 있고 교부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계승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기독교의 구원개념을 등치시켰다. 그러므로 플라톤에서 마르크스와 샤르트르까지 한 줄에 꿰는 족보가 완성되는 것이며 이들은 그 이전단계를 비판하고 있지만 본질은 한통속이다.


본질로 보면 샤르트르=마르크스=칸트=플라톤까지 이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합리주의다. 단지 버전을 바꾸어 온 것이다. 샤르트르와 마르크스와 칸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차이란 도스와 윈도와 윈도XP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반대편에 디오게네스와 마키아벨리와 니체와 까뮈가 있으나 이들도 소박하게 합리주의 전통에 안티를 하는 보완재에 그치고 있다. 대체재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서구철학은 기독교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 전혀다. 꽝이다.


근본적으로 모델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까뮈의 부조리라는 것도 칸트의 합리주의 모델을 소박하게 의심하며 시크한 표정을 짓는 정도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서양에는 철학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모델을 바꾸는건데 그들은 모델을 바꾼 적이 없다. 인간의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구조이며 전제는 call이고 진술은 why다. 둘은 결정되어 있다. 인간의 언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고도 정해져 있다.


call에 why를 충돌시켜 reason을 구하는 것이 서양철학의 알파요 오메가다. call은 신, 국가, 공동체, 가족 따위의 상부구조로 정해져 있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행동을 짜맞추는 것이 합리주의다.


부조리는 그렇게 세팅된 전제와 진술의 구조를 송두리째 타파하고 원점에서 새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까뮈 역시 안티를 걸었을 뿐 그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동양사상으로 말하면 죽림칠현의 완적과 혜강으로부터 완전한 답이 나왔다. 패러다임을 깨뜨린 것이다. 전제를 부정해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이 없다. 기본 전제가 없다. 희망과 욕망을 부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완벽하게 부정했을 때 몸의 반응이 들려온다. 거기서 출발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본이 없는 거다. 요즘 TV에서 하는 일밤 – 아빠! 어디 가?는 대본이 없다. 정글의 법칙도 대본이 없다. 리얼리티쇼다. 그런데 설정은 있다. 시트콤의 본질이 그러하다. 애드립을 따는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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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정해진 대본을 버리고 애드립을 치는 것이 돈오입니다. 여전히 대본대로 움직이는 수구꼴통이나 무뇌좌파들과 우리는 가는 길이 다르며 영원히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그들은 짐승입니다. 인간은 집단지능을 만들고 짐승은 정해진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 두 세계가 절대로 만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세계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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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란 무엇인가?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깨뜨려야 할 합리주의다.



◎ 집단을 부정하면 개인이 드러난다.

◎ 국가를 부정하면 집단의 의사결정구조가 드러난다.

◎ 메시지를 부정하면 풍자가 드러난다.

◎ 주제를 부정하면 병맛이 드러난다.

◎ 이태리가구를 부정하면 핀란드가구가 드러난다.

◎ 아카데미즘을 부정하면 인상주의가 드러난다.

◎ 김봉남을 부정하면 패션이 드러난다.

◎ 근대주의를 부정하면 현대성이 드러난다.

◎ 내세를 부정하면 현실이 드러난다.

◎ 천국을 부정하면 개혁이 드러난다.

◎ 합리주의를 부정하면 미학이 드러난다.

◎ 의미를 부정하면 관계가 드러나고 포지션이 드러나고 맥락이 드러난다.



부조리란 한 마디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집단적으로 뭘 해보자고 수작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항하기 위한 반항은 곤란하다. 깨달음에 기초한 레벨업이어야 한다.


맥락을 알아야 한다. 부조리는 2차 대전과 관련이 있다. 그 이전의 계몽주의와 관계가 있다. 그 이전의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계몽주의라면 2차대전의 악몽을 겪고 계몽주의 한계를 절감한데서부터 부조리의 인식은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



합리주의-계몽주의에서 어떤 전근대성, 봉건성을 포착한 것이다. 여기가 출발점이다.


부조리는 현대성이며, 깨달음이고, 미학이고, 완전성이다. 그것은 인간이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상부구조로 치닫는 병폐를 지적하고 개인의 완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강한 개인으로 올라서기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불교와 가깝다. 특히 까뮈에 있어서 부조리는 순수한 깨달음 그 자체다. 샤르트르는 약간 나이롱이다.


윤리, 도덕 따위는 집단의 메시지다. 애국, 반공 이런 것도 집단의 광기다. 집단에 의해 미쳐 돌아가던 세계가 개인에 의해 바로잡히는 것이 부조리의 정답이며 까뮈가 말하고자 했던 바다.


선문답은 정해진 정답이 없지만 사실은 정답이 있다. 그냥 정답이 없다고 우기는건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고, 정해진 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식한 사람이 하는 소리다.


분명한 정답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 그대가 어떤 답을 하든 묻는 말에 답을 하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질문이 call일 때 호응하여 because가 나오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누가 답하랬느냐고? 누가 대답하는 자의 포지션에 가서 서랬냐고?


call과 because가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면 상대의 call에 because 하지 말고 반대로 그대가 call을 쳐야 한다. 그대가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신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석가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달마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면 부처를 죽이고 달마룰 죽이겠다며 나를 치려는 사람 꼭 있다.) 국가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마라.


응답하는 자의 포지션에 서면 이미 깨달음은 저 멀리 달아나고 만 것이다. 그대가 세상을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대가 사건의 원인측이 되어야 한다. 그대로부터 사건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대가 기승전결의 기가 되어야 한다.


부조리란 응답하는 즉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그대가 욕망에 응답하는 한, 그대가 희망을 품는 한, 그대가 꿈을 들키는 한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모든 ‘위하여’를 끊어내고, 순수한 ‘의하여’에 서야 한다.


답은 있다. 의하여가 답이다. 세상의 부름에 응답하지 말고 반대로 그대가 세상을 향해 call을 치는 것이 답이다.


시에는 운율이 있고, 그림에는 구도가 있고, 음악에는 화음이 있다. 시는 운율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그림은 구도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음악은 화음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만화는 병맛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철학은 부조리에 의해서 풍성해진다. 더 넓은 세계로 올라선다.


주제, 메시지, 교훈은 부정되지만 현장에서의 섬세한 반응은 있다. 상호작용은 있다. 그림 바깥의 메시지를 부정하고 그림 자체에 내재한 조형적 질서를 찾는다. 미리 정해놓은 답을 찾지 않고 맞닥들인 현장의 리얼리즘에서 답을 찾는다.


보물찾기를 한다면 각본에 따라 미리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게 아니라 그렇게 숲을 뒤지고 다니면서 자연과 접촉하는 그것이 찾아야 할 보물이다. 그렇다. 보물은 없지만 분명히 보물은 있다. 그대는 찾았는가?


부조리는 합리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합리주의는 reason이며, 부조리는 reason의 부정이며, reason은 why나 because와 마찬가지로 call에 대한 호응이다. 누군가의 콜에 응하는 포지션에 서면 이미 졌다.


     ◎ 신이 그대를 call했다. - ‘조까!’
    ◎ 나라가 그대를 불렀다. - ‘조까!’
    ◎ 윤리가 그대를 불렀다. - ‘조까!’
    ◎ 돈이 그대를 불렀다. - ‘조까!’
    ◎ ( )가 그대를 불렀다. - ‘조까!’

 

전방위로 조까를 구사하는 것이다. 어떤 call이든 응답하면 진다. 큰스님이 어떤 질문을 하든 대답하면 진다. 끽다거... 부디 그 차를 마시지 말라. 마시면 퇴장당한다. 세상이 그대에게 부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순간 꼭두각시가 된다. 역할하지 말라.


부조리는 인생에 답이 없다며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답이 없다는 사실 안에 진정한 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유쾌해지는 것이다. 유쾌하지 않으면 부조리가 아니다.


그림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림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그림이겠나? 의미가 들어가면 텍스트다. 이 그림은 불로장수를 기원하고, 저 그림은 장원급제를 기원하고? 그게 그림이겠는가?


마찬가지로 인생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인생이겠는가? 그것은 개생이거나 돼지생이다. 인생에 의미가 없으므로 깨달음이 있다. 돈을 벌겠다, 출세를 하겠다, 성공을 하겠다, 애국을 하겠다 하는 그 의미를 버려야 한다.


깨달음도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잘난척 하는 먹물의 허무주의에 불과하다. 의미가 없기 때문에 깨달음이 있다. 위하여가 없기 때문에 의하여가 있다. 부조리가 사이비 철학자의 말장난이 되어도 곤란하고 무개념들의 현실도피수단이 되어도 곤란하다. 도망치지 않기 바란다. 부디.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하지?” <- 이거 부조리가 아니다. 전형적인 합리주의다. 이미 세상 탓하고 있다. 세상에서 답을 구하려 하고 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난 것을 반성하는게 부조리인데 아직도 세상 탓을?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깨뜨려야 할 합리주의다. 정신차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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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조리란 사전에 정해진 대본대로 가기를 거부하고 자의에 의해 즉흥적인 애드립을 넣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먹어준다는 종교, 윤리, 도덕, 애국, 성공, 명성, 출세로 가는 것은 다 정해진 대본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대가 천국을 가든 어디를 가든 대본대로 가는 것이면 이미 틀려버렸습니다. 그대가 새롭게 설계한 세상을 내보여야 합니다. 그대가 세상을 부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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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밀

인생의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자원을 모아야 한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에 의하여 얻어진다. 드라마는 여러 에피소드들의 집합이지만 관객은 극적인 긴장을 유발시키는 주제의식에 의해 전체를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되므로 거기서 감동과 교훈과 재미를 얻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매일 아침에 설레임을 안고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이유는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알맹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 전체를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조직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알지 못하는 긴장상태가 있다. 그것은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무의식 상태에서 작동하므로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하자면 게임과 같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가장 중요한 지식은 인생의 본질적인 게임에 관한 것이다. 누구도 그 게임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게임을 하고 실패를 저지르게 된다. 인생을 잘못 살게 된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공연히 화를 내며 허공에다 주먹질을 한다.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경찰과 도둑의 대결에 관한 이야기다. 지루해 하던 아이도 경찰과 도둑이 등장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한다. 무엇인가? 그것은 피아구분이다. 인생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무지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적인가이다. 이러한 분별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갓 태어난 망아지가 어미 쪽을 돌아보듯이, 공동체적 동물인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기편을 찾게 되어 있다. 설사 무인도에 고립된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라 할지라도 배구공 윌슨과 대화하며 불의의 위험에 대항하여 가상의 전선을 긋고 피아구분을 하여 내 편을 보호하려 한다. 무의식적인 가상적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가족이 소중해. 친구가 중요해. 사랑이 필요해. 돈이 필요해. 성공해야 해.’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국 인생의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자원확보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거쳐가는 정거장들이며 도달하여야 할 진짜는 따로 있다.


애초에 피아구분을 잘못하면 인생은 통째로 뒤틀리고 만다. 적을 자기편으로 착각하거나 혹은 자기편을 적으로 착각한다면 인생은 허무해지고 만다. 삶을 헛살은 셈이 되는 것이다. 철학, 사회, 정치, 역사, 예술 등의 인문지식은 본질에서 피아구분에 대한 지식이다. 누가 내편이냐가 중요하다.


인생승부의 본질은 자기편을 확보하는데 있다. 문제는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자기편이라고 착각하는데 있다. ‘나’는 내편일까? 이게 출발점이다. 내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다. 나의 신체감각이 나를 속일 수도 있다. 배가 고프다. 밥을 먹는다. 살이 찐다. 이건 배신이다. 나 자신에게도 속지 말아야 한다.


부모형제는 내편일까? 당연히 내편이라고 착각하는게 문제다. 나 조차 타인일 수 있는데 부모형제가 어찌 당연히 내편이겠는가? 물론 가족은 내편이지만 거기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전제조건을 지키면 부모형제는 당연히 내편이다. 그러나 조건을 어기면 타인이다. 그 숨은 전제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식을 버린 부모가 30년 만에자식을 찾아온다면 자식이 그 부모를 반길까? 아니다. 전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친부모라도 내 편이 아닐 수 있다. 부부가 이혼할 수 있듯이 부자라도 갈라설 수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숨은 전제를 찾아야 한다.




알베르 까뮈



까뮈의 이방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문열의 작품이 쓰레기인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까뮈는 숨은 진실을 말했고 이문열은 독자를 속였다. 그러므로 까뮈는 노벨상을 받았고 이문열은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일탈을 저지르는 이유는 소년기에 피아구분의 전선을 잘못 세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족이나 공동체가 당연히 자기편이며 따라서 자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그런데 그 전제가 틀렸다. 당연히 내 편일 리가 없다. 숨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내 편이다.


범죄자들은 당연히 내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바탕에 깔고 들어가므로 공동체에 의해 심리적으로 배신당한다. 그들은 자신이 먼저 배신을 당했으므로 가해자측인 공동체에 대항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 대항행동은 범죄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여긴다. 반성한다고 말하는 범죄자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엉뚱한 부분을 반성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를 향한 자신의 폭력이 왜 잘못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경찰이라는 강자에게 대든 것이 잘못이라는 식이다. 약자인 피해자 앞에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센 강자인 공권력 앞에 반성하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참회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먼저 피해를 당했다고 여긴다. 당한 만큼 되갚아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치명적인 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항상 먼저 당한다. 먼저 자신의 무의식에 속고, 자신의 신체적 욕구에 속는다. 그들은 사냥꾼의 함정에 빠진 짐승처럼 울부짖지만 거기서 제 힘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범죄자는 말한다. ‘내가 나쁜 길로 빠진 것은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바로잡아주지 않은 아빠 때문이다. 억울하다. 아버지를 잘못 만나서 팔자가 꼬였다.’ 말하자면 일종의 어리광이다. 문제는 상대가 내편이 아니라는데 있다. 같은 편이면 먼저 잘못한 쪽이 책임져야 하지만 적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적을 제압해야 한다. 먼저 포지셔닝의 우위에 서야 한다. 자신이 갑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범죄자들은 사회가 먼저 자기를 배신했고 따라서 자신은 사회에 대항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이 논리에 의해 자신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억울해하며 그 억울함이 보상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럴 권리가 없다. 왜? 먼저 '권(權)'을 얻었어야 했다.



권을 얻는 것은 싸이가 유튜브에 강남스타일을 올리는 것과 같다. 스타일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자원은 권(權)이다


무엇인가? 인생의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자원을 모아야 한다. 자원은 권(權)이다. 권은 소유권, 기득권, 인권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많은 권을 모아서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의 구조를 설계해야 비로소 가족과 이웃이 내 편이 된다. 그것이 깨달아야 할 숨은 전제조건이다.


권을 모으지 않으면 가족도 이웃도 국가도 내 편을 들지 않는다. 여기서 내편이라는 말은 필자의 임의적인 표현이고 구체적으로는 자신만의 독립적인 의사결정 영역이다. 특허권, 소유권, 인권 등은 자기만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컨대 발명가의 특허권과 작가의 저작권, 기업가의 경영권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발명가는 발명하지 않고, 작가는 작품을 내지 않고, 기업가는 경영하지 않는다. 그 영역에서는 권리를 가진 사람만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본질에서 자연의 법칙이다. 천부의 권리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바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부분의 크기가 그 사람의 인생의 규모를 결정한다. 그것을 계속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인생의 본질적인 게임이다.


인생의 게임에서는 누구도 내 편이 아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자기의 고윳한 권을 수집하고 있고, 그 권을 획득할 의도로 전략적인 동맹을 결성한다. 가족이나 이웃이나 국가는 그러한 전략적 동맹이다.


먼저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가족이, 나의 친구와 이웃이, 국가와 사회와 인류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은 나의 선제적인 의사결정에 의해서다. 역시'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다. 의하여를 성립시키는 것이 권이다. 권에 의해서만 누구든 내편이 된다. 일탈한 범죄자들은 선제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므로 항상 뒷북을 쳐서 남의 탓을 한다. 네가 먼저 어떻게 했기에 내가 어떻게 한다는 식이다.


선제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 편이 될 수 없다. 이제부터 내가 권을 모아서 먼저 나를, 다음 부모와 가족을, 그리고 친구를,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를, 국가와 인류를 내 편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하는 지점이 철이 드는 순간이다. 비로소 어른이 된다.


범죄자들은 선제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서 항상 남의 탓을 하는데 월드컵 축구예선 한일전이라도 하게 되면 곤란해진다. 일본팀을 응원하자니 재미가 없고, 한국팀을 응원하자니 사회의 적이 된 일탈자 입장에서 반 사회적 대항행동의 권리가 달아난다. 부조리다. 실패다. 비합리적인 포지셔닝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혹은 자식을 키우게 되면 혹은 남을 위해 돈을 지출하게 되면 권의 의미는 매우 중요해진다. 그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권을 모으게 된다. 능동적으로 나서서 선제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선제대응했다. 늘 옳은 판단만 한 것은 아니지만, 늘 먼저 제시하는 포지션에 선 것이다.



권의 법칙은 선제대응에 있다. 무조건 내가 먼저 찜해야 권리가 생긴다. 특허권이든 소유권이든 선점권이든 인권이든 경영권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이 적극 주장해야 인권도 보장된다. 자식이 나를 사랑하면 부모노릇 해주겠다는 식의 조건부 대응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부모가 먼저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자식이라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확실히 자신을 양육하겠다고 약속해주면 재롱을 부려주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무조건 자식이 먼저 부모를 향해 미소를 짓고 까꿍을 해야 한야 한다. 이는 절대적이다.


갓 태어난 송아지도 엄마에게 기댄다. 이 행동은 선제적이다. 어미도 먼저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역시 선제적인 행동이다. 새끼를 낳지 않는 수컷도 침입자를 경계하며 파수를 본다. 역시 무조건적이며 선제적인 행동이다. 선제행동에 의해 권이 축적되는 것이며, 그 권에 의해 내 편이 얻어지는 것이다.


철이 들지 않는 미성숙아들은 ‘남이 먼저 어떻게 하면 나도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응수논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틀린 것이다. 반드시 내가 먼저 어떻게든 해야 나의 권이 성립한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사회와 국가에, 그리고 인류에 어필해서 나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영역 곧 권을 이루고 그 권을 행사하여 조금씩 나의 바운더리를 넓혀나가는 것이 삶의 게임이다.


권은 기승전결의 전개에서 기에 서는 것이다. 승과 전과 결로 펼쳐지며 세상이 나의 편이 된다. 세상은 오직 권에 의해 작동하며, 권은 말하자면 편먹기 게임이고, 이 게임의 제 1원칙은 선제대응에 의한 권의 획득에 있다. 버스를 타도 맨 앞에 줄을 선 사람이 먼저 타고 좌석을 차지한다. 선점권, 기득권, 우선권 등의 권이 세상을 작동시키는 제 1 법칙이다.


세상은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만인대 만인의 투쟁의 장이 아니고, 권을 획득하기 위한 만인대 만인의 동맹의 장이다. 각자 선제대응하여 자기 권을 수집하고 타인과 권을 공유하며 거대한 의사결정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거미줄과 같이 거대한 퍼즐로 세상은 얽혀져 있다. 나의 거미줄만큼 나의 영역이 확보된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국가로 동맹하여 서로의 권을 공유한다. 한국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 내가 단지 한국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에서 대접받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나의 권이 있어야 상대와 권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거대한 권들의 집합체다. 선제대응하여 권을 발생시키는 것, 동맹하여 권을 공유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게임의 핵심이다. 모든 철학, 사상, 종교, 이념들은 이 권의 행사를 위한 편먹기 룰의 제안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어쩔 수 없다.


무작정 많은 친구를 사귄다고 해서 권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권은 선수를 친 쪽에만 돌아가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의 기에 포지셔닝해야만 권이 얻어진다. 적극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갓난 아기라도 먼저 울어야 엄마의 젖을 기대할 수 있다. 권은 권 자체의 결을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해


나가는 것만이 삶을 성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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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답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기승전결의 기에 서는 것입니다. 선제대응하여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하여 가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의사결정영역을 점차 확대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모두가 내 편에 서게 됩니다. 동맹하여 거대한 권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갈 때 인생은 통짜덩어리의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며, 모든 오류는 그 과정 속에서 용해됩니다. 그럴 때 두려워할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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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한것 같기는 한데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질문의 의미는 숨은 전제 찾기입니다.




제가 볼 때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일본을 망신시키려고 작정한 겁니다.

 

저 동영상을 번역하여 한국사이트에 올린 사람은 저 미친 또라이 일본인보다 저 방송국 기획자가 더 나쁜놈이라고 말하지만, 제 생각에는 일본인의 무지함과 한심함을 폭로하여 일본인을 각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봅니다. 일본인도 알건 안다는 거지요.

 

숨은 전제는(이 세상의 모든 숨은 전제는 같습니다.) 친하다는 겁니다. 즉 일본인은 일본을 영국, 프랑스, 한국, 미국, 독일 등 모든 나라와 친한 나라로 여기는 겁니다. 친한 사이에 할 수 있는 농담이라고 보는 거죠. 원래 남자들 친구끼리 모이면 추태벌이기 경쟁을 합니다.

 


 


일본인의 수준낮음을 과시하여 앞선 나라들에게 한 말씀 훈계를 듣는 자학 코미디죠. 코미디언 중에 인기있는 사람은 대개 박지선 처럼 자학코미디를 하는 건데, 얼마전에 개콘 보니까 뚱보, 키 작은사람, 안유명한 사람 등이 나와서 자학을 하더만.

 

나는 저게 일종의 자학 코미디라고 봅니다. 한국인은 한국을 비하하는 코미디를 안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합니다. 일본 서점가에는 자학코너가 있어서 일본은 안돼. 일본은 망한다는 내용의 책만 판다고 하던데 일종의 그런거죠.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세계의 변방, 비주류로 낙인찍고 자학코미디로 떠보아야겠다고 작정한 겁니다.

 

코미디언이 첨부터 자학을 하는건 아닙니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자학을 합니다. 이는 대장자리에서 짤린 늙은 수컷 침팬지가 마지막 수단으로 떼쓰기 데굴데굴 엉엉엉 생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망조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끔 보면 별로 안 친한 사이인데 막 친한척 하며 추태부리는 인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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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이 고등학생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충고 십계명

 

 (아래 인용한, 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 고등학생들에게 들려줬다는 수준 이하 10계명을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

 


 
 

 

 1) 에너지가 있는 인간이 되라.

 

에너지는 모순의 낙차에서 얻어진다. 첫째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모순에 관심을 가져라. 둘째 사회의 원초적인 모순에도 관심을 가져라. 모순만큼 힘이다. 힘은 집중이다. 집중은 최소비용으로 최고효과를 낸다.

 

치열한 인간, 뜨거운 인간이 되라. 인생 전체를 올인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거룩한 분노를 가져라. 세상 전부, 인류 전체, 역사 전체와 각을 세우라. 그것이 최소한 그대에게 드라마를 안겨줄 것이다.

 

 

2) 질감있는 사람이 되라.

 

질감은 환경과 교감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음악에도 반응하고, 그림에도 반응하고, 환경문제에도 반응하고, 빈부격차에도 반응하고, 남녀간의 특성에도 반응하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도 반응하라.

 

내 안의 성스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의 그 많은 재료들과 잘 섞여들고 그 속으로 잘 녹아들어라. 매질이 물질을 녹여 혼합하게 하듯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공존하고 모든 것에 대응하라.

 

 

3) 뛰어난 개인보다는 좋은 팀이다.

 

자신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미리 가 있어라. 모두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타인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지는 것보다 주는 것이 열배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4) 막다른 곳보다 네거리에 서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그대와 상의하고, 그대에게 질문하고, 그대에게 정보를 그대에게 가져오게 하라.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을 자신이 가지지 말고 그것을 중개하고 교통정리하는 사람이 되라.

 

 

5) 지식보다 전체과정의 경험이다.

 

공부로는 지식을 얻을 뿐이며 그 지식은 대개 타인을 위하여 기능한다. 반면 어떤 일의 기승전결 전체과정을 경험하면 세상을 설명하는 자기만의 언어를 얻을 수 있다. 세상 무엇이든 주도적으로 리드할 수 있다. 환경은 변화며 그 변화에 제일 먼저 대응할 수 있다. 변화된 환경의 선점이야말로 가장 이익이 크다.

 

 

6) 인생은 퍼즐맞추기다.

 

당신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이며 공부는 지금 단계의 맞춰야 할 퍼즐조각일 뿐이다. 그것도 한 물간 어른들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일 뿐이다. 인생의 전모는 그 퍼즐을 다 맞춰봐야 아는 것이다. 공부하여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는 훈련을 할 뿐이다.

 

인생은 프로세스, 프로세스, 프로세스다.(영화 머니볼에 나오는 표현. 머니볼은 단점의 보완보다 장점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7) 우리는 강팀이다.

 

인류 전체가 한 방향으로 간다. 인류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큰 무대의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각자 자기 개성을 살려서 다르게 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음을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인류 전체가 한 방향으로 통합되는 데서 기쁨을 얻고 거기서 성공을 찾아야 한다. 인류 전체의 진보 안에서 당신의 포지션을 찾아라. 인류에 기여하는 것이 성공이다. 성공한 팀의 일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이다.

 

 

8) 수비보다 공격하라.

 

보수는 수비수, 진보는 공격수다. 인생의 게임에서 수비수가 되지 말고 공격수를 자원하라. 수비는 한 곳만 뚫려도 전체가 망가지지만 공격은 한 곳만 뚫어도 전체가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다. 시너지 효과가 큰 것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이다. 긍정하고 도전하고 진보할 때 성공의 가치는 극대화 된다.

 

 

9) 자기를 배제하라.

 

자기를 배제할 때 팀이 드러난다. 환경이 드러나고 진리가 드러나고 프로세스가 드러나고 가야할 길이 찾아진다. 자기와 관련시키지 않고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마침내 그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게 좋아 그래서 이걸 선택했어’ 하고 말하면 실패다. ‘여기서는 이게 규칙에 맞아. 그러므로 이걸 선택해야 해.’ 하고 말할 때 무언가를 아는 것이다. 그 규칙은 타인과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 최고의 사람을 만나라.

 

인생은 양보다 질이다. 질은 레벨을 높이는 것이다. 최고의 그룹에 소속되는 것이 가장 가치있다. 그것은 돈 많은 그룹이 아니라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그룹에 소속되는 것이다.

 

한국 안에서 가장 창의적인 그룹, 가장 혁신적인 그룹, 가장 전위에 선 그룹, 가장 역동적인 그룹, 가장 자유롭고 고상한 그룹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그 그룹을 이끄는 것이 가징 큰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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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 꾸는 대안교육은 애들 머리 속에 뭔가 주입하는게 아니다. 구조론이 주장하는 것은 최고의 포지션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먹히고 효과는 극대화 된다.

 

그런데 머리 나쁜 노력파 애들 몇 낑겨 있으면 데이터 왜곡현상이 일어나으로 최고의 조합을 결성할 수 없다. 우리가 대안학교를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최고의 괴짜 100명을 모아서 그들로부터 하루씩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멋진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지적인 충격을 받는 것이다. 그 충격이 자산이 된다. 좋은 교육이란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챙겨주고 만났을 때 쫄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소스를 쥐어주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예로 든다면, 그 선생이 가르친 내용보다 단지 그 선생이 멋쟁이이고 멋쟁이와 같은 공간에 거주한다면 저절로 스며드는 것이 있다. 그게 진짜 교육이다. 이렇다 저렇다 가르치는 것은 뭣도 아니다.

 

예술을 알고 멋을 알고 진짜배기를 아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고등학생이 빌 게이츠를 만났다면 그 자체로 좋은 지적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시시하다.

 

강의석, 낸시랭, 이외수, 임재범, 김태원, 김어준 등등 이런 사람은 멋진 선생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수비수보다 공격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인류의 삶의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사람들이다. 옳건 그르건 상관없이 그들은 인류의 삶을 풍성하게 했다. 설사 틀려도 쫄지 말고 인류의 무대를 넓혀가야 한다.

 


 

빌게이츠가 고등학생들에게 한 인생충고 십계명

 

1.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2. 세상에 너희들 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3.대학교육을 받지않은 상태에서 연봉 4만달러가 될것이라고는 상상하지마라.

 

4.학교 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하거든 사회에 나와서 직장상사의 진짜 까다로운 맛을 한번 느껴봐라.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마라.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6. 네 인생을 내가 망치고 있으면서 부모탓을 하지마라. 불평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라.

 

7. 학교는 승자와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현실은 이와 다르다는것을 명심해라.

 

8. 인생은 학기처럼 구분되어 있지도않고 여름방학이라는 것은 아예 있지도 않다.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지않으면 직장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9. TV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커피를 마셧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

 

10. 공부밖에 할줄모르는 "바보"한테 잘 보여라. 사회에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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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플러스 사고의 실패사례.

 

보석과 돌이 섞여 있을 때 빛나는 보석이 아닌 지저분한 돌에 먼저 관심이 갔다면 이미 실패. 이건 불평하는 애들한테 불평하는 소리.

 




 

 
     
  
배씨 
wrote at 2013.01.12 10:14
정말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멘토를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경험하는 것 만큼 큰 교육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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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이 어렵다는 분에게는 정답만 찍어주기로 한다. 구조론 10계명을 정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5분만에 쓴 내용이므로 아래 각 항목의 내용은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사실 전부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기도 하다.

 
 
- 구조론 10계명 - 

 

1) 마이너스로 가라. 
2) 탑 포지션을 차지하라. 
3)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상호작용의 밀도를 올려라. 
5) 에너지의 결을 따르라. 
6) 나쁜 길로 가라. 
7) 2로써 1을 이겨라. 
8) 완전성을 이해하라. 
9) 세력을 형성하라. 
10) 선 공간공격 후 시간공격이다.

 

이상의 내용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머리 속에 입체적 모형을 그리고 이미지를 띄우는게 중요하다. 상호관계의 시소 위에 올라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시소에서 내리는 마이너스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마이너스 – 에너지가 가는 순방향이다.
 
◎ 플러스 – 에너지가 없는 역방향이다.

 
구조론은 한 마디로 '에너지의 결'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이너스는 에너지가 가는 순방향이고, 플러스는 순리를 거스르는 역방향이다. 언제라도 순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선택의 기로에 서면 대부분 잘못된 선택을 한다.

 
한 두명이 잘못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열이면 열, 다 잘못 판단한다. 만약 바른 선택을 한다면 사전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선택을 보고 그 반대로 움직인 경우 등으로 외부 환경이 개입된 경우다. 외부환경의 개입이 없이 완전 생초짜 상황이면 거의 전부 잘못된 선택을 한다. 원래 구조가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 어떤 판단과 결정은 대상과의 상호관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시소 위에 올라타 있다.
 




상황이 발생한 즉 이미 역설이 작동하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다. 의도는 항상 반대로 된다. 얻으려고 할수록 잃으며, 지키려고 할수록 뺏긴다.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는 마이너스를 실행하여 먹이를 던져주고 재빨리 그 현장을 이탈하라.



 
왜 MC몽은 오판을 계속해서 스스로 매를 버는가? 왜 이하늘은 오판을 계속해서 스스로 매를 버는가? 상대의 반응을 떠보고 2차로 자기 판단을 하려는 꼼수 때문이다. 이때 상대는 되치기로 반응하며 상호작용을 늘려서 탑 포지션을 차지한다. 탑 포지션을 뺏겼다면 무조건 진다.

 
MC몽이나 이하늘은 어떻게 대응하든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그 경우에는 딴 생각하지 말고 마이너스를 실행하여 재빨리 그 현장을 이탈하는 것이 최선이다.




 
안철수는 다르다. 이 양반 뭔가를 안다. 상대의 반응을 떠보지 않고 바로 결단을 내렸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상대가 5 정도를 예상하고 있을 때 10이나 혹은 100까지 진도를 나가버리는 것이다. 이명박과 반대다. 

 
유시민도 논객 출신이라서 말이 많은 편인데 말로 상대의 반응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떻게든 상대가 반응하면 그 반응하는 상대에게 유익하다.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마이크 넘기지 말아야 한다. 




 
강호동도 약간 안다.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마이너스를 행하여 재빨리 현장을 이탈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 했다. 역설의 시소에서 내려버린 것이다.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은 이미 역설의 시소 위에 올라탄 것이다. 이때 시소는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속지 말고 의연하게 제 길을 가야 한다. 길을 알고 가야 그것은 가능하다. 

 
간단하다. 계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한바탕 휘저으면 상호작용이 증가하며 저절로 길이 만들어진다. 그 길을 가면 된다. 어떤 판단을 할 때 에너지가 갑이고 자신은 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지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상호관계에 속지 말고 에너지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일을 벌이고 주도권을 잡고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 만들어져 있는 시소에 올라타고 있지 말고, 밖에서 다른 시소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거기에 태워야 한다.


 
◎ 시스템 - 5포지션으로 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가 순환되는 진화형 생장구조를 건설하라.

 
◎ 메커니즘 – 4포지션으로 ‘A면 B다’를 충족시키는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구축하라.

 
◎ 구조 – 3포지션으로 YES와 NO를 판정하는 시소형 대칭구조를 세팅하라.

 
◎ 패턴 – 2포지션으로 토대를 공유하는 닮음을 찾아 서로 짝지어라.

 
◎ 팩트 – 1포지션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정하라.


 
보통 문제가 발생하면 팩트를 거론하면서 어설픈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이하늘의 구구절절한 과거사 파헤치기가 그렇다. 팩트야 말로 수구꼴통과 무뇌좌파가 사기치는데 동원하는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팩트로 논하면 이명박이 이기고, PD수첩이 진다. 팩트가 아닌 본질로 승부해야 한다. 사실관계가 문제가 아니고 포지션이 문제다. 포지션으로 보면 이미 당신은 시스템과 메커니즘과 구조 안으로 들어와 있다. 이미 역설의 시소 위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이때 시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시소는 위의 3번 구조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구조는 시스템, 메커니즘, 구조(스트럭쳐), 패턴, 팩트 전부를 통칭해서 말하지만 일단 3번째 구조가 구조 중에서 구조다. 

 
구조는 메커니즘과 시스템이 유익하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미 구조가 강호동과 MC몽과 이하늘과 이명박과 나경원과 오세훈과 안철수를 태웠을 때는 공동체에 유익하게 작동하며 이들을 마이너스 시키는 것이다. 구조가 작동하면 무조건 공동체에 유익하다. 

 
구조는 무조건 시스템을 발달시키고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순방향으로 움직이며 그대를 패대기친다. 이때 구조를 모르고 시스템을 건드린 MC몽, 이하늘, 이명박. 나경원, 오세훈은 자연패대기를 당했고, 구조를 간파한 안철수는 1500억을 마이너스 하여 오히려 그 에너지에 올라탔으며, 강호동은 현장이탈초식을 구사하여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했다. 

 
자연 패대기 조심하라. 훅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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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님(함성한)의 격투기 구조론에서 ..
구조론의 질에 해당하는 것은 마인드.. 그것은 눈빛.. 눈빛이라는게 뭘까? 



   - 경력에 따라 눈빛이 달라진다. 사장은 사납고, 부장은 음흉하고, 과장은 허풍쟁이, 대리는 천방지축, 사원은 무개념, 인턴은 겁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사장이 제일 눈동자가 작다.-

그것은 상대방의 전체를 보는 눈이다. 모니터를 낮은 위치에서 보면 글자가 커보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글자가 작아 보인다. 황소는 눈동자가 커서 상대방이 자기보다 커보이므로 겁이 많다. 사자나 호랑이는 눈동자가 작아서 상대방이 자기보다 작아보인다. 상대방이 작아보여야 전모를 볼 수 있다. 상대의 동작 전체를 순간적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고수의 눈빛이란 전모를 보는 것이다.



허영만 화백이 해석한 징기스칸의 눈빛.. 사백안이다. 만화가 진행될수록
눈동자가 점점 작아져서 사장이 되어가고 있다.




호랑이나 사자는 원래 사백안이다.

 

째려보고 노려보면 상대가 작아보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째려보기만 하면 되는가? 그건 아니다. 상대방의 동작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타격을 연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레프트로 막고 다음 라이트로 치고 이렇게 주워섬기면 연동되지 않은 것이다. 둘 이상의 동작이 하나의 판단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동작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눈빛이 선해진 용팔이 김용남씨..


그런 연습을 많이 하면 눈빛에 그것이 반영된다. 그리고 실제로 눈동자가 작아져서 사백안이 되면 조폭으로 오인된다. 실제로 눈이 변한다. 조양은이나 용팔이 김태촌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타짜에 조언해준 타짜 장병윤씨의 사기도박 동영상에 보면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은 밀도다. 밀도는 여럿을 한 자리에 우겨넣은 것이다. 즉 1 안에 2가 들어간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상대방의 상체와 하체가 따로따로 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들어가는 것이며, 시간적으로는 상대방의 첫 번째 동작과 두 번째 동작을 동시에 읽고 대응하는 것이며, 타격에서는 첫 번째 가격과 두 번째 가격이 연속적으로 장탄된 것이다. 한 번 방아쇠를 당겨서 두 발을 연이어 쏜다.

그런 것은 눈빛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므로 하수는 고수의 눈빛만 봐도 얼어버린다. 상대가 나의 몸 전체를 주시하고 장악하고 지배하고 마음까지 훤하게 읽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타짜 장병윤씨.. 사기도박 동양상을 보면 눈빛이 번뜩이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이 양반은 항상 바닥에 깔아놓은 화투판과 상대방을 동시에 보고 있다.


문제는 여자다. 여자들은 남자의 눈빛을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 같은 여자의 눈빛은 잘 읽는지 몰라도. 최홍만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까지 자신에게 시비를 건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는 여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여자들은 최홍만이 귀엽다고 한다. ‘최홍만 귀엽잖아. 골려먹어야지.’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는 거다. 어디가 귀엽다는 걸까? 나쁜남자 증후군이 있다. 고르고 골라서 나쁜 남자를 피하려고 노력할수록 도리어 나쁜남자에게 걸리는 거다.

나쁜 남자가 연애때는 나쁜 남자 티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본능적으로 안다. 딱 보면 나쁜 남자다. 여자는? 모른다. 최홍만이 귀여운데 나쁜 남자가 나쁘게 보이겠느냐 말이다.

나쁜 남자 joe son, 딱봐도 흉악범이다. 수십건의 성폭행과 살인, 심지어
교도소 살인까지 저질렀다. 근데 이 사람을 보고 귀엽다고 할 여자가 있을 것만 같다.

문제는 나쁜남자가 그 나쁜남자에게 당하는 여자의 마음을 읽고있다는 거다. 그리고 연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한다. 눈빛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권투를 해보면 연속동작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타 이타 삼타까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눈빛이 있다. 어떻든 상대방의 신체 전체를 봐야 한다. 눈을 동그랗게 크게 치켜뜨고 보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게 예측하고 대응할 때 저절로 눈동자가 작아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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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2.08.30 09:45
한 번 포장 호랑이, 늑대와 개
wrote at 2012.08.30 09:45
재미있는 블로그, 양이온 감사
wrote at 2012.08.30 09:49
나는 호랑이입니다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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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의 균일

 

자연계는 기본적으로 밀도가 걸려 있다. 그러므로 자연은 5포지션이다. 4포지션을 초과하는 위상의 균일은 없으므로 4포지션은 안정되나 1,2,3포지션은 상위 포지션에 흡수되므로 불안정하다. 주변에 더 높은 포지션이 있을 때 외력의 작용을 받아 하위 포지션은 상위 포지션에 흡수된다. 불안정한 1,2,3 포지션은 자연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항상 다른 것에 빌붙어 있으며 운동할 때의 포지션 이동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성립한다. 4포지션은 안정되어 있으나 자체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다. 자연계에서 모든 사건은 5포지션에서 일어난다.


 


권투선수는 입체이므로 4포지션이다. 4포지션으로는 대칭이 성립되지 않아 힘을 쓸수 없으므로 발로 땅을 굴러서 그 반작용의 힘으로 1을 얻어 5를 만들어 펀치를 쏘아보낸다. 이때 몸통의 4, 어깨의 3, 팔의 2, 주먹의 1포지션으로 포지션은 한 단계씩 층위가 내려간다. 곧 마이너스로 가는 것이다. 권투선수가 지구의 힘을 빌지 않고 허공에서 힘을 쓰려면 자기 내부에서 5포지션을 만들어야 한다. 제자리 높이뛰기를 하듯이 몸을 움츠렸다가 펼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은 매우 약하다. 로켓은 개스를 분사하여 우주공간에서도 5포지션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개스가 몸통에서 이탈한다. 자신이 파괴되어야만 힘을 쓰는 것이다. 4포지션만으로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발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하나의 일은 5>4>3>2>1포지션 순서로만 일어난다. 5포지션에서 3포지션이나 2포지션으로 건너뛸 수는 없다. 왜냐하면 힘의 전달은 각 단계에서 부분적인 대칭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힘의 전달은 5:5>4:4>3:3>2:2>1:1의 순서로 5회에 걸쳐 부분적인 대칭을 성립시킨다. 5포지션에서 하나를 빼고 남는 4로 4포지션의 4와 대칭되고 다시 4포지션에서 하나를 빼고 남는 3으로 3포지션의 3과 대칭되는 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일은 위상이 한 레벨씩 낮아지는 형태로만 일어나고 힘의 전달은 위상이 같은 상태에서만 일어난다. 위상이 낮은 선에서 위상이 높은 각으로는 힘을 전달할 수 없다. 하극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에 빠진 사람이 물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힘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부하가 상사에게 힘을 쓸 수 없듯이 낮은 위상은 높은 위상에게 힘을 전달할 수 없다.

 

총은 총알을 쏠 수 있지만 총알은 총을 쏠 수 없다.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은 그 떠내려가는 운동이 1차원 선이므로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힘을 전달할 수 없다. 점은 선을 칠 수 없고, 선은 각을 칠 수 없으며, 각은 입체를 칠 수 없고, 입체는 밀도를 칠 수 없다.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약 낮은 위상에서 높은 위상으로 힘을 가하려 하면 높은 위상은 낮은 위상을 지팡이로 삼아 오히려 지탱한다. 위상이 낮은 사람이 위상이 높은 사람을 일제히 공격하면 위상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더 안정된다. 이런 현상은 정치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사람은 안티들의 공격이 오히려 그 사람의 입지를 공고하게 한다. 반면 위상이 낮은 연예인들은 한 방에 훅 간다.
 


 


양은 운동을 안정시키고, 운동은 힘을 안정시키며, 힘은 입자를 안정시키고, 입자는 밀도를 안정시킨다. 위상이 높은 상대에게 흡수되어 도리어 상대를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입자가 많은 힘에 둘러싸여 공격당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이는 건물이 무게에 짓눌릴수록 오히려 안정되는 것과 같다. 피라밋은 입자를 이루고 있다. 많은 힘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하다. 그러므로 입자인 자동차가 너무 가벼우면 곤란하다. 항해하는 배가 바닥짐(ballast)을 싣듯이 힘이 무거워야 입자가 편안하다. 위상이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치는 하극상은 오히려 상대를 이롭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운동은 위상의 균일을 따라간다. 그것이 결이다. 자연계에서 모든 운동은 결을 따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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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3.11.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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